1956년 다트머스 회의를 상징하는 이미지. 빈티지한 책상에 '인공지능' 글자가 쓰인 노트와 펜이 놓여 있고, 배경에는 당시 연구자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많은 책과 기사에서 1956년 다트머스 회의를 “인공지능의 탄생”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이미 그 이전에도 똑똑한 기계에 대한 연구와 논의는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다트머스 회의가 왜 상징적으로 ‘AI의 출생 신고서’로 불리게 되었는지, 당시 연구자들이 어떤 기대와 오해를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이 사건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정리합니다. 다트머스 회의를 둘러싼 신화와 실제를 구분해 보면,…

왜 다트머스 회의를 ‘AI의 탄생’이라고 부를까?

많은 서적이 “AI는 1956년 다트머스 회의에서 시작되었다”는 문장으로 역사를 엽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튜링의 논문, 초기 신경망 연구, 자동화 논의 등은 이미 존재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회의가 특별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처음으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이름을 공식적인 연구 주제로 선언하고, 여러 분야의 연구자를 한자리에 모아 “지능을 기계적으로 구현하자”라는 공동 프로젝트를 제안했기 때문입니다.

즉, 다트머스 회의는 AI라는 이름과 연구 프로그램에 공식적인 “간판”을 달아준 사건에 가깝습니다.
실제 기술의 출발점이라기보다는,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질 연구 방향에 ‘제목을 붙인 순간’이라고 보는 편이 더 현실적입니다.

회의를 기획한 네 명의 설계자

다트머스 회의는 네 명의 연구자가 함께 제안서를 작성하면서 시작됩니다.
각각의 배경을 보면 당시 AI가 어떤 생각에서 출발했는지 더 잘 보입니다.

  • 존 매카시(John McCarthy):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용어를 제안한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입니다. 논리와 상징 조작을 통해 지능을 설명하고 구현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 이후 MIT AI 연구소를 이끄는 핵심 인물이 되는 연구자입니다. 인간 지능을 기계적으로 분석하고 구성할 수 있다는 매우 낙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클로드 섀넌(Claude Shannon): 정보이론의 창시자로, 통신과 계산의 수학적 구조를 정립한 인물입니다. 암호, 게임, 퍼즐 같은 문제에서 “기계적 사고”의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 네이선 로체스터(Nathan Rochester): IBM 연구원으로, 실제 컴퓨터 하드웨어와 초기 프로그램 개발을 담당하던 실무형 연구자였습니다.

이 네 사람은 “두 달 정도 집중적으로 함께 연구하면, 인간 지능의 주요 측면을 기계로 구현하는 방향이 잡힐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오늘 기준으로 보면 과감하다 못해 무모한 계획에 가깝지만, 당시에는 디지털 컴퓨터 자체가 ‘혁명적 도구’로 보이던 시기였습니다.

1956년 여름, 다트머스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나?

다트머스 회의는 미국 뉴햄프셔주에 있는 다트머스 대학에서 1956년 여름에 열린 소규모 워크숍 형태의 모임입니다.
요즘 학회처럼 수백 명이 모이는 행사가 아니라, 길게는 몇 주 동안 소수의 연구자가 드나들며 토론하는 느슨한 연구 모임에 가까웠습니다.

당시 제안서에서 내세운 연구 주제는 오늘 읽어도 꽤 야심찹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 언어 이해
  • 추론과 문제 해결
  • 학습(learning)
  • 창의적 활동의 모사

즉, 우리가 오늘 “AI의 핵심 기능”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이미 당시 제안서에 대부분 등장합니다.
다만, 실제 회의에서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많은 성과가 나오지는 못했습니다.

참여자 수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각자 관심 분야도 달랐기 때문에, 통합된 이론이나 결정적인 돌파구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기계가 지능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여러 접근법이 부딪히고 섞인 장이 되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두 달이면 인간 지능을 구현할 수 있다?” 지나친 낙관의 배경

다트머스 제안서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선정된 연구자들이 한 여름 동안 집중적으로 연구하면, 인간 지능의 주요 측면을 상당 부분 모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문장입니다.

오늘 기준으로 보면 명백한 과대 기대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낙관적이었을까요?

당시에는 이미 다음과 같은 성과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 1950년대 초반, 체스를 두는 프로그램, 논리 증명 프로그램 등이 등장
  • 섀넌의 정보이론을 통해 “정보”를 수학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자신감
  • 튜링의 “계산 가능한 것”에 대한 이론으로,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어떤 계산도 기계로 가능하다는 믿음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많은 연구자들은 **“지능도 결국 복잡한 계산일 뿐이고, 계산을 잘 설계하면 곧 해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컴퓨터가 막 등장한 시점이다 보니, “시간이 더 지나면 생각보다 금방 인간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자연스럽게 퍼져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낙관은 이후 **AI 겨울(AI Winter)**을 부르는 한 원인이 됩니다.
기대에 비해 현실 성과가 따라오지 못하면서, 연구비와 관심이 급격히 줄어드는 시기가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다트머스 회의가 남긴 철학적 질문들

다트머스 회의는 단순한 기술 워크숍이 아니라, 몇 가지 중요한 철학적 질문을 전면에 올려놓은 사건이기도 합니다.

  1. 지능은 계산으로 환원 가능한가?
    인간의 사고, 직관, 창의성까지도 논리와 상징 조작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2. 기계가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튜링 테스트와 연결되는 주제로, 외부 행동만으로 판단할 것인지, 내부 구조와 과정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지 논쟁이 이어집니다.
  3. 인간 지능과 기계 지능의 관계는 무엇인가?
    인간을 모사하는 것이 목표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방식의 ‘지능적인 인공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목표인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됩니다.

이 질문들은 1956년에만 한 번 던져지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대규모 언어 모델(LLM)과 생성형 AI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거의 같은 질문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신화 vs 현실: 다트머스 회의를 어떻게 봐야 할까?

다트머스 회의를 “AI의 시작점”이라고 부르는 말은 어느 정도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실제 기술적 출발점은 그보다 전후로 흩어져 있습니다.

  • 이미 1940~1950년대 초반에 튜링, 맥컬러&피츠(초기 신경망), 섀넌의 연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 다트머스 회의 이후에도 AI 연구는 여러 갈래로 분화되며, 하나의 명확한 “출발선”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트머스 회의가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이름의 공식화
    연구 제안서에 이 용어가 명시되면서, 이후 하나의 학문 영역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됩니다.
  2. 연구 커뮤니티의 형성
    여러 학교,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AI”라는 공통 주제로 모이기 시작하는 출발점 역할을 했습니다.
  3. 연구 의제의 설정
    언어, 추론, 학습, 창의성 등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AI의 핵심 과제가 이때 이미 목록화되었습니다.

정리하면, 다트머스 회의는 **기술적으로 모든 것이 시작된 지점이라기보다, ‘AI라는 이름의 깃발을 꽂은 사건’**으로 보는 것이 균형 잡힌 이해입니다.

비유로 이해하는 다트머스 회의: 출생 신고서에 가깝다

다트머스 회의를 하나의 비유로 정리해 보면 이해가 조금 더 쉬워집니다.

  • AI의 실제 “임신 기간”은 1940~1950년대 여러 연구에서 이미 진행 중이었습니다.
  • 다트머스 회의는 그동안 흩어져 있던 연구들을 모아 “이제부터 이 아이의 이름은 ‘인공지능’입니다”라고 출생 신고를 한 순간에 가깝습니다.

아이의 삶은 출생 신고서 이전에도, 이후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하지만 행정적으로는 그 서류가 중요한 기준점이 되는 것처럼, AI 역사에서도 다트머스 회의가 하나의 기준점으로 반복해서 언급됩니다.

현재 시점에서 다시 보는 다트머스 회의의 의미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AI 기술은, 다트머스 회의 당시 상상과는 꽤 다른 길을 걸어왔습니다.

  • 상징 조작 위주의 “고전적 AI”에서, 통계 기반 머신러닝, 딥러닝, 대규모 언어 모델로 중심이 이동했습니다.
  • 그럼에도 “언어 이해, 추론, 학습, 창의성”이라는 큰 목표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에서 다트머스 회의는 **“문제 목록을 잘 정의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해결 방식은 바뀌었지만, 무엇을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큰 틀은 지금까지도 유효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기대와 현실의 간극입니다.

  • 1956년에는 몇 년 안에 인간 수준의 지능이 가능할 것처럼 이야기했습니다.
  • 2020년대인 지금도, 비슷한 기대와 불안, 과장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다트머스 회의를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현재의 AI 열풍을 조금 더 차분하고 긴 시간축에서 바라보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다트머스 회의가 주는 오늘의 교훈

다트머스 회의는 세 가지 정도의 교훈을 남깁니다.

  1. 이름을 붙이고, 의제를 정하는 것의 힘
    “인공지능”이라는 이름과 명확한 연구 의제를 제시하면서,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질 학문·산업 생태계의 방향을 설정했습니다.
  2. 장기적인 관점의 필요성
    몇 달, 몇 년 안에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은 결국 AI 겨울로 이어졌습니다. 기술 발전은 생각보다 느리지만, 한 번 축적되기 시작하면 또 생각보다 깊게 축적됩니다.
  3. 철학과 기술이 함께 가야 한다는 점
    “기계가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지능은 계산으로 환원 가능한가?” 같은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런 질문 없이 기술만 빠르게 발전하면, 기대와 실망의 반복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오늘 우리가 다트머스 회의를 다시 보는 이유는, 과거를 추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AI를 조금 더 냉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meta_know 인사이트

다트머스 회의는 “기술적인 돌파구”라기보다, AI라는 이름과 문제의 목록을 선언한 순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렇게 보면, 지금 우리가 보는 생성형 AI와 대규모 언어 모델도 결국 그때 정리된 문제 목록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가는 과정에 놓여 있습니다. 과거의 과도한 낙관과 AI 겨울의 경험을 함께 기억할 때, 오늘의 AI 열풍을 단기 유행이 아닌 긴 흐름 속의 한 국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독자 여러분은 “지금 내 일과 삶에서 AI를 어디까지, 어떻게 현실적으로 사용할지”를 차분히 설계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핵심 정리

  • 다트머스 회의는 AI 기술이 “시작된 날”이라기보다, ‘인공지능’이라는 이름과 연구 의제가 공식화된 사건입니다.
  • 회의 당시에는 “몇 달 안에 인간 지능을 상당 부분 모사할 수 있다”는 과도한 낙관이 있었고, 이는 이후 AI 겨울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 언어 이해, 추론, 학습, 창의성 등 오늘날 AI가 다루는 핵심 목표는 이미 다트머스 제안서에 대부분 등장합니다.
  • 이 역사를 이해하면, 현재의 AI 붐을 “새로운 혁명”이 아니라 오랜 연구 흐름의 연속선상에서 더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다음 읽을 거리

이 글을 흥미롭게 보셨다면, 「1950년대: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에서 시작된 질문」 글도 함께 읽어 보시면 좋습니다. 초기 사상적 배경을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트머스 회의 이후의 흐름이 궁금하시다면, 「1960–1970년대: 초기 낙관과 첫 번째 AI 겨울」 편을 이어서 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AI 개념 전반을 정리하고 싶다면, AI 101 시리즈의 「AI란 무엇인가? – 우리 생활 속 AI 찾아보기」 글을 먼저 훑어보시는 것도 좋은 학습 순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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